광명시, ‘홍범도 장군 유해 귀환’ 기념전시회 개전식 및 추모행사 개최

  • 등록 2021.09.09 13: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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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우원식 국회의원 축사 및 격려
- 박승원 시장, 8일 시민분향소 찾아 장군의 숭고한 정신 기려

 

[광명=조수제 기자] 광명시가 8일 평생학습원 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홍범도 장군 기획전시회 및 시민분향소’ 현장에서 기념전시회 개전식 및 추모행사를 광복회 광명시지회와 공동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승원 광명시장, 박성민 광명시의회 의장, 김충한 광복회 광명시지회장,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우원식 국회의원, 황원섭 부이사장, 김동건 사무총장, 정광균 이사, 류관숙 광명시교육지원청 교육장, 최준 광명소방서장, 이형덕, 이주희 광명시의원, 3.1운동 기념관 설립추진위원인 이병익 광명농협조합장, 조용호 광명상공회의소장,  김광선 (주)RBDK 등이 참석했다.

 

광명시는 서거 78년, 봉오동 전투 101년 만에 돌아온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을 추모하고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일부터 광명시 평생학습원에 시민분향소와 기획 전시회를 운영하고 있다.

 

시민분향소는 10일까지 전시회는 18일까지 운영한다. 전시회에서는 ‘어둠의 시기 고통과 좌절 그러나 우리는 저항했고, 우리는 승리했다’를 주제로 홍범도 장군 관련 자료와 사진 30여점을 전시한다.

 

이날 행사는 전시회 관람, 묵념, 헌화, 홍범도 장군의 걸어온 길 낭독, 추념사 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추념사를 통해 “장군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며, “장군의 귀환은 현재 코로나 등 어려운 시기에 서로를 의지하며 위기극복에 함께하고 있는 우리 시민들에게 큰 힘과 희망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광명시의회 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아직도 많은 독립영웅들이 해외에 남아 계시다.“며, ”그 분들을 모시고 오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이자 의무“ 라고 말했다.

 

우원식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광명시에서 시민들이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광명시를 시작으로 이 같은 캠페인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충한 광복회 광명시지회장은 ”사람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가 외로올 때“라고 하면서”장군은 78년 동안 외롭게 계셨다“고 한동안 말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홍범도 장군은 1868년 8월 27일, 홍윤식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호는 여천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가 출산 휴유증으로 사망하고 동네 부인들로부터 동량젖으로 자랐고, 또 9살 되던 해에는 부친마저 병으로 세상를 떠나 고아가 됐다.

 

이후 장군은 작은 아버지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지내다가 어느 부잣집의 머슴 노릇을 하기도 했다.

 

15살이 되던 해인 1883년 평안 감영의 나팔수로 입대 했으며, 3년여 간의 병영생활은 장군에게 생활의 안정을 가져다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모순을 체험한 시기 이기도 했다.

 

군대의 핵심으로 국가와 민족을 보위하여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진 군교들의 부정과 비리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결국 장군은 날로 심해가는 군교들의 부정부패와 사병들에 대한 학대를 보다 못해 그 가운데 한 사람을 구타하고 병역을 탈출 했다.

 

1897년 평남과 함남, 그리고 황해도 접경지역에서 일본군을 살상하고, 친일관리와 부호들을 응징하는 등 단독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장군은 포연대를 주축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반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포수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여 갔으며, 의병부대는 포수들의 총을 압수하여 북청으로 반출하는 일본군을 후치령에서 습격하여 적군 2명과 일본인 순사 1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미야베 대위가 지휘하는 일본인 군경 70여명과 3시간 동안 격전을 벌여 적군 30여 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장군의 의병부대는 1908년 11월 장군이 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1차 망명하기까지 수십 차례 일본군과 격전을 치르며 혁혁한 전과을 거두었다.

 

일본인 금광을 습격하여 금괴를 빼앗아 군자금으로 이용하는 등 실로 대담무쌍한 활동을 벌였다. 그리하여 장군은 ‘날으는 홍범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독립군을 총괄 지휘하는 총사령관을 맡았으며 1920년 독립군의 본거지였던 만주 봉오동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거뒀다.

 

또한 같은 해 10월 김좌진 장군이 이끈 청산리전투에 제1연대장으로 참전해 큰 공을 세우는 등 무장독립운동사에 한 획은 그었다.

 

1930년대 연해주 거주 당시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으며 숨질 때까지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이번 유해 봉환으로 8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조수제 기자 ghtimes7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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