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한 회장 칼럼]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 기념일을 맞이 하여...

  • 등록 2022.04.11 13: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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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나라를 빼앗기고 10여 년이 흘렀다. 없어진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열기가 타 올랐다.

 

 

그것이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이다.

 

바로 그해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4월 11일 망명지 중국의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 하게 되었다.

 

헌법전문 첫머리에 “유규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말이 나온다.

 

근 현대사만 보면 전통에 빛나는 것 같지는 않다.

 

국호는 “대 조선국”에서 “대한제국”으로 1897년 10월 12일 변경하였다.

 

대한제국 왕조는 조선왕조의 계승국이며 왕권 군주제였고, 국민의 삶은 그대로 였다.

 

13년 만에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경술 국치로 멸망에 되었다.

 

외국에서 대한제국을 인정해 주고 기억 해 주는 나라는 없었으며, 그냥 그렇게 소멸될 위기에 처 해 있었다.

 

또한 나라 없는 백성은 노예와 다름없었다.

 

약삭 빠른자들은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을 악날하게 괴롭히는 선수가 되었다.

 

그래야 일본의 신임을 얻을수 있었기 때문 이었을 께다.

 

10여년이 흐른 후에야 나라없는 서러움을 안 민중은 3.1만세 운동을 펼쳤고, 이에 힘입어 망명지에서 국민이 주인되는 공화정을 채택한 임시정부를 세웠다.

 

국호는 대한 민국으로 정했다.

 

“아! 대한민국”

 

오늘이 103년전 그날이다.

 

 

비록 망명지에서 만들어 진 임시 정부 이지만 민중에게는 나라를 되 찾을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가열찬 독립운동이 펼쳐 졌다.

 

외국에서도 한국인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독립의 길은 험하고 멀어져 갔다.

 

일본의 무단 통치에서 3.1운동 이후 문화 통치로 바뀌면서 변절자들은 늘어 나게 되었다.

 

국내에서의 독립운동도 임시정부도 침체기에 접어 들었다. 이때 또 한번 민족을 구하는 경천동지 할 일이 일어난다.

 

이봉창 의사의 일왕 저격사건과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는 움츠려 들던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윤봉길의사의 홍커우 공원의거는 만보산 사건으로 침체 되어 있던 중국과 한국의 소원한 관계를 일순에 뒤집어 놓았고, 장개석 총통은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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